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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1장 14절 - 2장 3절 / 큐티

by 보통날의 발견 202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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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큰 날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18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여호와를 찾으라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2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임박한 여호와의 날, 피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스바냐 1장 14절 - 2장 3절 말씀 연구와 묵상

어제는 스바냐 1장 전반부를 통해

영적 안일함에 빠진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경고를 묵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등불을 들고서라도 숨은 죄악을 낱낱이 찾아내어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본문은 바로

그 '여호와의 날'이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두려운 날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하며,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열어두신 유일한 피난처, 유일한 살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1. 말씀 연구: 피할 수 없는 진노의 날 (슥 1:14-2:3)

(1) 빠르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1:14-18)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14, 18절)

 

14절은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라는 반복과 강조를 통해

심판의 임박성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더 이상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날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입니다.

그날의 소리는 너무나도 두려워서,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치던 용사마저도 두려워하며 슬피 울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을 다양한 이미지로 묘사하며 그 끔찍함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 분노, 환난, 고통, 황폐, 파멸의 날: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쏟아지는 날이며, 인간의 모든 노력이 무너지는 고통의 날입니다.
  • 캄캄하고 어두운 날, 구름과 흑암의 날: 한 줄기 빛도 없는 절망과 혼돈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는 날: 피할 곳이라 여겼던 인간의 모든 방어막(견고한 성읍)이 무너져 내리는 날입니다.

가장 충격적인 선언은 18절에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여겨지는 "은과 금"이 그날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돈으로 구원을 살 수도, 심판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2) 돌이키라! 진노가 이르기 전에 (2:1-2)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1-2절)

 

이처럼 무서운 심판의 선포 뒤에,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돌이킬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라는 호칭은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뻔뻔하고 무감각한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모이라"고 부르십니다.

 

"모이라"는 것은 회개를 위해 함께 모이라는 촉구입니다.

그리고 그 회개는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심판의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즉 순식간에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고 재촉하십니다.

이는 심판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3) 유일한 피난처: 여호와를 찾으라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3절)

 

그렇다면 그 끔찍한 진노의 날에 숨어 피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스바냐는 명확하게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1. 여호와를 찾으라: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습관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2. 공의를 구하라: 하나님을 찾는 것은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올바른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불의와 죄악에서 떠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3. 겸손을 구하라: '겸손'은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이나 능력을 의지하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행하는 "겸손한 자들"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혹시'라는 표현은 구원이 인간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에 달려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겸손히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2. 묵상과 적용: 나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저는 제 삶의 '견고한 성읍'과 '은과 금'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을 찾기보다 먼저 제 통장의 잔고나 인맥을 떠올리지는 않습니까?

건강, 지식, 경험 등 내가 쌓아 올린 것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스바냐는 그 모든 것이 '여호와의 날'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피난처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말씀이 촉구하는 것처럼, 더 늦기 전에 여호와를 찾아야겠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간절히 주님을 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공의와 겸손을 삶으로 살아내야겠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다른 사람 앞에서 나를 내세우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겸손한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너희가 혹시 숨김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우리의 행위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오직 겸손히 주님을 찾고 의지할 때,

우리를 위해 모든 진노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에서

우리는 안전히 숨김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

 

참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며 살았던 저의 교만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가올 심판의 날에 저의 은과 금이 저를 구원하지 못함을 깨닫고,

오직 주님만이 저의 유일한 소망이심을 고백합니다.

더 늦기 전에 주님을 찾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아래에서 참된 안식과 보호를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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