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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스바냐

스바냐 3장 1절-8절 / 큐티

by 보통날의 발견 2025.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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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죄악상

 

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2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3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4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5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예루살렘을 향한 기대와 실망 

 

6 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망대가 파괴되었고

  내가 그들의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의 모든 성읍이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7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심판 선언


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등불 아래 드러난 심장부의 죄악: 스바냐 3장 1-8절 말씀 연구와 묵상

 

어제는 스바냐 2장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했던 교만한 열방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무너져 내리는지를 묵상했습니다.

세상의 강대국들을 향한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 앞에서

우리는 역사의 참된 주관자가 누구이신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무서운 심판의 불길이 방향을 틀어 다시 한번 그 심장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도시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외부의 적들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각했던 내부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지, 스바냐 3장 1절부터 8절 말씀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1. 말씀 연구: 총체적 부패에 빠진 성도(聖都) (슥 3:1-8)

(1)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린 예루살렘 (1절)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1절)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세 가지 이름으로 부르시며 그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십니다.

  1. 패역한 성읍: '패역하다'는 것은 주인을 배반하고 반역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할 백성이 오히려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반역의 길을 걸었습니다.
  2. 더러운 성읍: 제사를 통해 정결함을 유지해야 할 거룩한 도시가 우상 숭배와 죄악으로 완전히 더럽혀졌음을 의미합니다.
  3. 포학한 성읍: '포학'은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의와 사랑이 흘러넘쳐야 할 하나님의 도시에 불의와 폭력이 가득했습니다.

거룩한 도시, '살렘'(평화)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해 버렸습니다.

 

(2) 듣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 (2절)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2절)

 

예루살렘의 근본적인 문제는 '듣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려움이 닥쳐올 때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세상의 힘을 의지했고,

결국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는 삶, 즉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장 큰 영적 위험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3) 지도층의 총체적 부패 (3-4절)

스바냐는 예루살렘의 타락이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 전체의 문제였음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 방백들 (정치 지도자): 백성을 지켜야 할 그들은 오히려 "부르짖는 사자"처럼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백성을 삼켰습니다.
  • 재판장들 (사법 지도자): 공의를 세워야 할 그들은 "저녁 이리"처럼 탐욕에 눈이 멀어 아침까지 남겨둘 것이 없을 정도로 약자들의 것을 착취했습니다.
  • 선지자들 (종교 지도자):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해야 할 그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자들"이 되어,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거짓 평안을 외치며 자신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 제사장들 (예배 지도자): 거룩함을 지켜야 할 그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여" 예배를 타락시키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했습니다.

총체적 리더십의 붕괴, 이것이 예루살렘이 소망을 잃어버린 이유였습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5-8절)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나를 기다리라" (5, 8절)

 

이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스바냐는 한 줄기 빛을 선포합니다.

바로 그 타락한 성읍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전히 의로우셔서, "아침마다 빠짐없이" 새벽빛처럼 당신의 공의를 비추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른 열방들을 심판하신 역사를 교훈 삼아 유다가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수치를 알지 못하고" 악한 길을 고집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마지막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나를 기다리라." 여기서 '기다리라'는 것은 소망의 기다림이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의 집행을 목도하라는 준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향한 당신의 분노를 쏟으실 때까지,

그 심판의 자리에서 기다리라는 무서운 선고입니다.

 


2. 묵상과 적용: 내 안의 불의를 직면하다

오늘 말씀은 교회를 다니고, 신앙인의 정체성을 가진 우리에게 더욱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1) 나는 '듣고 있는가'?

 

예루살렘의 가장 큰 죄는 '듣지 않음'이었습니다.

저에게 말씀이 제 삶을 바꾸는 '명령'과 '교훈'이 아니라,

그저 머리로만 동의하는 '지식'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의 음성보다 세상의 소리, 나의 경험과 이성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듣는 것에서부터 순종이 시작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2) 내 삶의 리더십은 건강한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미치는 리더의 자리에 있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사자'나 '이리'와 같은 모습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 편의대로 해석하는 '간사한 선지자'나,

예배의 거룩함을 가볍게 여기는 '더러운 제사장'의 모습은 없습니까?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리더십을 회복해야겠습니다.

 

(3) 아침마다 비추시는 공의의 빛을 바라보라.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계시며 "아침마다 빠짐없이" 당신의 공의를 비추고 계십니다.

나의 죄악과 세상의 불의함에 낙심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어둠을 이기시는 이 공의의 빛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빛 가운데 나의 죄를 정직하게 드러내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벌하실 날"은 악인에게는 최종 심판의 날이지만,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자에게는 모든 불의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의가 완전히 실현되는 구원과 회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기도]

 

의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면서도 패역하고 더러운 길을 걸었던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완고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제 안에 있는 모든 불의와 탐욕을 주님의 빛 앞에 내려놓사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옵소서.

아침마다 새롭게 비추시는 주님의 공의를 붙들고,

심판이 아닌 구원의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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