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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이동원 원로목사] 경기대 | 9.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 | 신명기 8:1-10 | 2023.04.23 | 지구촌교회

by 보통날의 발견 2025.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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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광야의 시간, 그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깊은 뜻 - 이동원 목사 설교 묵상

우리 인생에는 '광야'와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메마른 현실 속의 갈증, 방향을 잃은 채 헤매는 불안감.

 

누구도 원치 않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이 광야의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통과해야 할까요?

 

소설가 최인호의 동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속 주인공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어른이 되어

여전히 삶의 문제들 앞에서 서툴게 넘어지곤 합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고백했듯,

 

우리의 신앙 또한 광야라는 학교를 통해

미성숙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벗고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신명기 8장 1절에서 10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그저 고통을 주기 위함이 아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사랑의 섭리를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광야의 의미를 깨닫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이동원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이끄시는 세 가지 이유를 함께 묵상하며,

현재 광야의 시간을 걷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소망을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 '말씀'으로 사는 백성을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끄셨을까요?

 

신명기 8장 2절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힙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광야의 모든 사건,

모든 경험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를 시험하는 하나님의 테스트였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이 훈련의 핵심은 3절에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유혹에 바로

이 신명기 말씀으로 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굶주림보다 더 근원적이고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친히 삶으로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광야는 '떡'의 문제, 즉 먹고사는 문제, 생존의 문제가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생명이 '떡'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에 달려있음을 몸소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광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의 문제, 진로의 불확실성 등

수많은 '떡'의 문제가 우리를 짓누를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총동원할 것인가,

아니면 잠잠히 엎드려 나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씀이 떡보다 소중함을 고백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징계' 또한 사랑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광야의 시련은 때로 하나님의 '징계'라는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신명기 8장 5절은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징계'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징계는 미움이나 분노의 표출이 아닌,

'사랑'에 기반한 교육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시는 중에도 사랑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시며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이는 빌립보서 4장 19절의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약속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쓸 것(needs)'을 책임지시는 분이지,

우리의 '모든 원하는 것(wants)'을 채워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신실한 공급하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민수기 11장을 보면, 그들은 만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애굽에서 먹던 생선과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을 그리워하며 탐욕을 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죄악에 대해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징계는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과 6절은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징계가 없다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라는 말씀처럼,

지금 겪고 있는 고난과 시련이 나를 더 온전한 자녀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원망 대신 감사로, 낙심 대신 소망으로 광야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셋째, 궁극적인 '약속의 땅'을 소망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광야는 결코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고통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들어가게 될 땅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해주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신명기 8:7-9) 

 

이 약속의 땅에 대한 비전은 척박한 광야의 현실을 견뎌낼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광야에서의 시련이 깊어질수록,

약속의 땅을 향한 갈망과 소망은 더욱 간절해졌을 것입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라는 광야를 지나는 동안 겪는 고통과 시련,

슬픔과 아픔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본향,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더욱 간절히 소망하게 만듭니다.

 

로마서 8장 18절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선포합니다.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그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볼 때,

현재의 고난은 더 이상 우리를 압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고난은 장차 올 영광의 무게를 더하는 과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21:2)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굳게 붙들 때,

우리는 광야의 어떤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마르틴 로이드 존슨 목사님의 딸은 아버지를 회고하며,

그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슬퍼하지 말라. 나는 평생 이 순간을 위해 설교했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영국의 한 노설교가 또한 "나는 천국에 대한 설교를 할 때면 마치 고향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흥분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처럼,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지요 소망인 천국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광야의 길을 감사함으로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광야는 끝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시고, 단련시켜

마침내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용광로입니다.

 

말씀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사랑의 징계를 통해 더욱 단단해지며,

영원한 본향을 소망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광야는 더 이상 저주의 땅이 아닌,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aXIRT_1WD8&t=9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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