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를 보면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황금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문득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저한테는 '도둑들', '해운대', '암살'이 딱 그런 영화들입니다. 물론 세 편 다 천만 관객을 훌쩍 넘긴 '국민 영화'이긴 하지만, 단순히 흥행 성적을 떠나서 다시 볼 때마다 처음 봤을 때의 그 몰입감과 감동이 느껴집니다. '도둑들'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범죄 영화의 정석 같습니다. 화려한 배우들의 팽팽한 연기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해운대'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재난 영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웃음과 눈물을 넘나들게 만드는 그 특유의 한국적인 감성은 다시 봐도 가슴 찡합니다. '암살'은 가슴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즉 '시대를 초월한 영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영화들이 왜 '명작'으로 불리는지, 이 세 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왜 지금 봐도 '명작'으로 평가받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도둑들: 케이퍼 무비의 정점
제가 영화 '도둑들'을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의 그 흥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영화인데, 얼마 전에 다시 봐도 "와, 진짜 잘 만들었다"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괜히 1,300만 가까운 관객이 이 영화를 본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도둑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배우들입니다. 김윤석, 김해수, 이정재, 전지현에 김수현까지... 지금 다시 모으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이 라인업이 한 영화에 다 나온다는 것부터가 사건이었습니다. 배우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데, 스크린 안에서 각자 욕망을 불태우면서 서로를 속소 속이는 모습을 보니 정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최동훈 감독 특유의 착착 감기는 대사 맛은 또 어떻습니까? 특히 "어떻게 인생이 맨날 해피엔딩이야?"라는 대사는 그냥 멋진 대사를 넘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씁쓸한 메시지 같아서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홍콩과 마카오를 넘나드는 화려한 배경에 스타일리시한 액션까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단순한 도둑들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배신과 욕망, 그리고 인간적인 감정들이 얽혀 있어서 몇 번을 다시 봐도 새로운 부분이 보입니다. '도둑들'은 그냥 잘 만든 오락 영화를 넘어, 한국 케이퍼 무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이 있다면, 혹은 봤더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정주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운대: 재난영화의 새로운 지평
2009년에 여름, '해운대'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전까지 쓰나미가 나오는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그것도 너무나 친숙한 부산 해운대를 배경으로 그런 거대한 재난이 펼쳐진다는 게 처음엔 잘 상상이 안 갔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거대한 해일이 모든 걸 집어삼키는 장면은 다시 봐도, 2009년 기술력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총 1,13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해운대'가 단지 기술적인 성취만으로도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진짜 힘은 재난 속에서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더 마음을 울렸던 것 같습니다. 배우로는 하지원, 설경구, 박중훈 등 실력파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가족, 사랑, 이별, 희생이라는 정서를 묘사했습니다. 평범하게 웃고 떠들던 일상을 보여준 이웃들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재난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위하고 희생하는 가족애와 인간애를 보여줍니다.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는 그들의 이야기가 깊은 공감과 감동을 줍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재난 장르가 상업적으로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작품입니다. '해운대'는 한국 영화도 이런 대형 재난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정말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형 재난 영화의 문을 활짝 연, 잊을 수 없는 영화로 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암살: 역사와 오락의 균형을 잡다
2015년 개봉한 '암살'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첩보 액션 영화입니다. "알려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 이 대사처럼 '암살'은 우리에게 잊힌 독립운동가들의 일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당시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영화입니다. 배경은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로, 친일파 암살 작전에 나선 독립군들의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함께 가슴 뜨거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배우는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로, 한 영화에 같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이건 무조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정말 배우들이 각자 자기 역할을 너무 완벽하게 해냅니다.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건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을 연기한 전지현 배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정우 배우가 연기한 낭만적인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은 또 얼마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정재 배우의 변신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감정 연기 덕분에 영화의 깊이가 확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암살'이라는 영화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건, 단순히 재미있는 액션 영화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습니다. 화려한 총격전이나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도 기억에 남지만, 제 마음속에 더 깊이 파고든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조국을 위해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분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사는 건, 저분들의 희생 덕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 한쪽이 묵직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보고 즐기는 오락 영화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암살'은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결론
"도둑들"을 보면서는 두뇌 싸움으로 짜릿한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었고, "해운대"를 보면서는 가슴 저린 감동으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리고 "암살"을 보고 나서는 가슴 한편에 올라오는 뭉클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세 영화가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까지도 '인생 영화'로 꼽히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단순히 관객 수가 많고 볼거리가 화려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영화 속에 우리랑 똑같이 웃고, 울고, 화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나도 "맞아, 맞아"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꾸만 다시 찾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영화들을 아직 안 보셨거나, 저처럼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면 이번 주말, 느긋하게 한 편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