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시편 137편 1-9절: 바벨론 강가에서 흘린 눈물, 그리고 기억
우리는 지금까지 역대하, 에스라, 학개, 느헤미야를 통해 포로 귀환과 재건의 역사를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시편 137편은 그 모든 역사의 배경이 되는,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바벨론 포로 생활'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나라를 잃은 슬픔, 조롱당하는 신앙, 그리고 압제자를 향한 터질듯한 분노가 날것 그대로 담겨 있는 이 시편을 통해,
고난 중에 성도가 가져야 할 마음을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본문 들여다보기 (시편 137:1-9)
시편 137편은 작자 미상의 비탄시로, 바벨론 포로지의 참담한 현실과 예루살렘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합니다.
1. 바벨론 강가에서의 통곡 (1-4절)
- 수금(Harp)을 버드나무에 걸다: 시인은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 시온(예루살렘)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던 악기인 수금을 연주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버드나무에 걸어둡니다.
- 조롱하는 요청: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이 "너희의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불러보라"며 유흥거리로 삼으려 합니다. 이는 신앙인에게 가장 큰 모욕이었습니다.
- 거절: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4절) 그들은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거룩한 찬양을 부를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합니다.
2. 예루살렘을 향한 굳은 맹세 (5-6절)
- 잊지 않겠다는 다짐: 시인은 예루살렘을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수금 타는 재주를 잊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도 좋다(노래하지 못해도 좋다)"는 맹세를 합니다. 자신의 재능과 생명보다 예루살렘(하나님의 처소)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고백입니다.
- 가장 큰 기쁨: "내가 나의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예루살렘을 더 즐거워할지로다." (6절) 포로 생활의 고달픔 속에서도 그의 최고의 가치는 여전히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3. 원수를 향한 저주와 심판의 호소 (7-9절) 이 부분은 시편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저주 시(Imprecatory Psalm)' 부분입니다.
- 에돔을 향한 분노: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 형제 국가였던 에돔은 돕기는커녕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며 바벨론을 응원했습니다(옵 1:10-14). 시인은 그 배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 바벨론을 향한 심판: 시인은 바벨론을 "멸망할 딸"이라 부르며,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 어린아이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것: 9절의 끔찍한 표현은 당시 고대 근동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반영합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에게 행했던 잔인한 학살을 그대로 돌려받기를 원한다는, 억눌린 자의 처절한 탄식이자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호소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복수를 넘어 하나님께 공의의 집행을 맡기는 기도입니다.
오늘의 나에게 주시는 말씀
1. 세상의 유흥을 위해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지 마십시오.
세상은 우리에게 "너희가 믿는 것을 보여줘 봐, 우리를 즐겁게 해 봐"라고 조롱 섞인 요청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거룩한 것을 값싸게 팔지 마십시오.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두는 한이 있어도, 우리의 찬양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자존심을 지키십시오.
2. 당신의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입니까?
시인은 바벨론의 화려한 문명 속에서도 예루살렘을 자신의 '가장 큰 즐거움'보다 위에 두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가장 즐거워합니까? 성공, 돈, 자녀, 취미입니까?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더 위에 두겠노라는 고백이 우리에게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3. 재능은 하나님을 기억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을 잊는다면 자신의 오른손(재능)이 마르고 혀가 굳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채 누리는 재능과 기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재능과 기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길을 잃은 것입니다.
나의 '오른손'은 지금 누구를 위해 연주하고 있습니까?
4. 분노와 상처까지도 기도로 쏟아내십시오.
9절의 끔찍한 저주는, 성경이 인간의 가장 깊고 어두운 감정(복수심, 분노)까지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내 힘으로 복수하려 하지 말고 그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으십시오.
"하나님, 너무 억울합니다. 저들을 심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을 받으시고, 심판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내 영혼의 해독제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공의로우시며 우리의 아픔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바벨론 강가에서 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때로는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고 억울하여 주님 앞에 눈물로 나아갑니다.
세상의 조롱과 유혹 앞에서도 거룩한 자존심을 지키게 하시고,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주님을 찬양하는 입술을 더럽히지 않게 하옵소서.
제 삶의 그 어떤 기쁨보다 주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가장 위에 두기를 원합니다.
저의 재능과 삶이 오직 주님을 기억하고 높이는 데 쓰이게 하소서.
제 안의 억울함과 분노, 복수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주님 앞에 솔직하게 쏟아놓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오니, 제 마음을 치유하시고 주님의 평강으로 덮어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본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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