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길, 무심코 지나치는 터널. 만약 그곳이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이자,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2016년, 우리에게 이 끔찍한 상상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하정우 주연의 재난 영화 '터널'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터널에 갇힌 남자가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생존을 둘러싼 터널 밖 세상의 소란,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아주 날카롭게 꼬집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이 영화의 처절한 생존기부터, 터널 안과 밖의 사람들, 그리고 제가 이 영화를 왜 '가장 현실적인 재난 영화'라고 생각하는지, 그 씁쓸하지만 꼭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줄거리
만약 매일 같이 출퇴근하며 지나다니는 익숙한 터널에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 나 혼자 갇히게 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2016년 여름, 우리에게 이 끔찍한 상상을 현실처럼 느끼게 해 준 영화, '터널'의 줄거리를 되짚어보겠습니다. 평범한 자동차 영업사원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이정수(하정우). 딸의 생일 케이크를 싣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하던 그의 눈앞에서, 방금 막 진입한 터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칠흑 같은 어둠, 꽉 막힌 콘크리트 잔해, 그리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찌그러진 차 안입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간당간당한 휴대폰 배터리와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아이의 케이크가 전부입니다. 처음에는 119 구조대와 통화가 연결되며 금방이라도 구출될 것 같은 희망에 부풉니다.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은 "포기하지 말라"며 그를 격려하고, 아내 세현(배두나) 역시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하지만 구조 작업은 예상보다 길어지고, 세상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터널 밖에서는 그의 생존이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버립니다. 언론은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정치인들은 현장을 찾아 카메라 앞에서 사진 찍기에 바쁩니다. 구조 작업으로 인해 제2터널 공사가 지연되자, 사람들은 한 사람의 목숨값과 사회적 비용을 저울질하기 시작합니다. 구조보다 '시청률'과 '지지율'이 더 중요해진 세상의 민낯이, 터널 안의 어둠보다 더 차갑고 무섭게 다가옵니다. 모두가 포기하려 할 때, 정수는 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아내와 "제가 꼭 구해낼 겁니다"라고 약속하는 구조대장의 목소리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냅니다.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그는 살아남기 위해 오줌을 받아 마시고, 하나 남은 케이크를 아껴 먹으며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결국 영화는 한 사람의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구조대의 끈질긴 노력과, 가족을 향한 가장의 위대한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결말을 보여줍니다. "다들 너무 쇼하고 있네." 구조된 후 그가 내뱉는 씁쓸한 한마디는, 영화를 본 우리 모두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깁니다.
'터널'은 단순한 재난 영화를 넘어, '생명의 가치'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아주 묵직한 작품입니다.
등장인물
이 영화는 단순히 터널 '안'과 '밖'이라는 공간만 나눈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정수 (하정우) - 터널에 갇힌 남자는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어제까지 평범한 출근길에 올랐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샐러리맨이자 가장입니다. 그래서 그의 고립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아빠,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 그리고 강아지 탱이와 남은 음식을 나눠 먹는 인간적인 모습은 하정우 배우 특유의 '생활 연기'와 만나 엄청난 몰입감을 줍니다. 영웅이 아니라, 살고 싶고 가족이 보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기에 우리는 그의 생존을 더 간절히 응원하게 됩니다. 김대경 (오달수) - 터널 밖의 유일한 희망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진짜 어른'입니다. 구조대장으로서, 그는 비효율적인 구조 방식에 대한 비난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생명이 우선"이라는 단 하나의 원칙을 끝까지 지켜냅니다. 터널 안 정수와 유일하게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며, "포기하지 말라"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돌아가는 세상 속 유일한 희망처럼 들립니다. 세현 (배두나) - 무너지지 않는 기다림은 정수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갇힌 터널 앞에서 오열하기보다는, 그가 살아있음을 믿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강인한 인물입니다. 남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매일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구조 현장을 묵묵히 지키는 그녀의 모습은 '기다림'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의 방식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터널 밖의 '그들' (언론과 정치인)은 정수의 생존이 '특종'이 되고, 구조 현장이 '포토라인'이 되는 순간, 영화는 우리 사회의 가장 불편한 민낯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숫자와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그들의 모습은, 터널을 막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보다 더 답답하고 차갑게 느껴집니다.
결국 영화 '터널'은 극한의 재난 속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각기 다른 태도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추천 이유
이 영화를 단순한 재난 영화로만 생각하면, 그 안에 담긴 진짜 메시지를 놓치기 쉽습니다. 첫째, 이건 재난 영화의 탈을 쓴 '사회 고발 영화'입니다. '터널'의 진짜 공포는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가 아니라, 터널 밖의 세상에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언론에게는 시청률 경쟁의 도구가 되고, 정치인에게는 지지율을 올릴 기회가 되는 모습입니다. '구조 비용'을 운운하며 생명의 가치를 숫자로 계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쩌면 좀비보다도 더 무서운, 우리 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보는 내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둘째, "만약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가 대단한 건, '터널 붕괴'라는 거대한 재난을 지극히 평범한 '나'의 이야기로 느끼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출근길에, 여행길에 무심코 지나치는 바로 그 공간. 그곳에 내가 갇혔을 때, 과연 세상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구해줄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하정우 배우의 너무나도 현실적인 생존 연기는, 이 질문에 대한 관객의 몰입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셋째, '믿고 보는 배우'들이 주는 감동의 깊이가 다릅니다.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이 세 배우가 만들어내는 연기의 합은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신파 없이도, 담담한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절망과 희망, 분노와 안도감을 모두 전달합니다. 특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는 오달수 배우의 모습과,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하정우 배우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모든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터널'은 스릴과 긴장감을 즐기는 재난 영화이면서도, 그 끝에는 우리 사회와 '사람의 도리'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수작입니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오락 영화가 아니라, 영화 한 편을 보고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