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1절 - 15절 / 큐티

by 보통날의 발견 2026. 2. 13.
반응형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낫고자 하는 갈망을 깨우는 은혜: 베데스다의 자비와 순종

 

어제 우리는 말씀 한마디를 믿고 길을 떠난 왕의 신하를 보았습니다.

그가 말씀의 '능력'을 경험했다면,

오늘 우리는 아무런 소망 없이 38년이라는 긴 세월을 웅크려 지낸 한 병자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자비'를 마주합니다.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가졌으나 정작 자비가 사라진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진정한 안식의 주인이 누구인지 함께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본문 들여다보기 (요한복음 5:1-15)

1. 자비가 메마른 자비의 집 (1-5절)

  • 핵심 단어/구절: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 의미: '베데스다(Bethesda)'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지만, 실상은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기 위해 서로를 밀쳐내야 하는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었습니다. 그곳에 3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병마에 갇혀 소망을 잃어버린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일어날 수도,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철저한 무력함(Helplessness)의 상징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종교적 행위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 인류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2. 의지를 깨우는 질문과 무기력한 변명 (6-7절)

  • 핵심 단어/구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의미: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 중 가장 오래되고 소망 없는 자를 먼저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의 치유를 넘어, 오랜 절망에 길들여져 포기해버린 그의 영적인 갈망과 의지를 일깨우시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병자는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라며 환경과 사람을 탓하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는 여전히 기적이 '물'에서 온다고 믿었으나, 기적의 주인은 바로 그의 앞에 계셨습니다.

3. 안식을 주시는 말씀의 위엄 (8-13절)

  • 핵심 단어/구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 의미: 예수님은 병자의 변명을 꾸짖지 않으시고 단번에 치유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일어나(Get up), 들고(Pick up), 걸어가라(Walk)"는 세 가지 명령에 병자는 즉각 순종하여 치유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병 고침의 기쁨보다 '자리를 들고 가는 행위'가 율법을 어겼다며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형식에 매여 생명을 외면하는 거짓 안식을 깨뜨리시고, 고통받는 자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는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4. 치유보다 중요한 영적 회복 (14-15절)

  • 핵심 단어/구절: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의미: 후에 성전에서 그를 다시 만나신 예수님은 영적인 권고를 하십니다. 육체의 치유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심한 것'은 영원한 심판과 단절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그가 육신의 건강을 얻은 것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길 원하셨습니다. 은혜를 입은 자는 이제 자신이 만난 분이 누구인지 세상(유대인들)에 증언하는 사명자로 서게 됩니다.

오늘의 나에게 주시는 말씀

 

1. 오랜 절망에 길들여져 '낫고자 하는 갈망'을 잃지는 않았습니까?

 

38년 된 병자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에 "네, 낫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원망부터 쏟아냈습니다.

혹시 당신도 반복되는 문제나 연약함 속에서

'내 형편은 어쩔 수 없어', '환경이 안 도와주는데 어떡해'라며 기대를 포기한 채 누워만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당신의 무기력을 뚫고 찾아오셔서 다시 묻고 계십니다.

문제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 당신 곁에 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잃어버린 소망과 열정을 회복시키길 원하십니다.

 

2. 조건과 환경이라는 '연못'에만 소망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베데스다의 병자들은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살길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돈이 생기면, 인맥이 생기면, 환경이 나아지면 내 인생이 풀릴 것이라 믿으며 세상의 '연못'만을 주시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치유와 해답은 요동치는 물이 아니라, 곁에서 말씀하시는 주님께 있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1등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주님의 말씀 한마디면 38년 된 불가능도 순식간에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의지하고 있는 베데스다 연못은 무엇입니까?

 

3. 주님이 주신 자유를 '자리를 들고 걷는 순종'으로 증명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병자에게 누워 있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는 수치와 고통의 흔적이었지만, 이제는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때로 주님은 우리에게 익숙한 편안함(누워 있던 자리)을 박차고 일어나 행동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비난하는 유대인들 앞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들고 걸어갔던 병자처럼, 당신에게 주신 은혜를 삶의 실천으로 보여주십시오.

당신의 변화된 삶의 궤적이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소망 없는 자들의 친구가 되시는 하나님,

아무도 도와줄 이 없어 홀로 38년을 견뎌온 병자처럼,

저 역시 인생의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사람과 환경을 탓하며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다시금 제 영혼이 깨어나게 하시고,

세상의 방법이 아닌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소망을 두게 하옵소서.

제 삶을 묶고 있던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치유와 자유를 삶의 현장에서 당당히 증거하게 하소서.

육신의 회복을 넘어 다시는 죄의 종노릇 하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며,

저를 찾아오신 주님의 자비를 잊지 않고 늘 성전의 기쁨 속에 머물게 하옵소서.

참된 안식과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