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지금 돌이켜봐도 참 영화 볼 맛 났던 한 해로 기억합니다. 코미디, 스릴러, 판타지까지. 그중에서도 유독 제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세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극한직업, 기생충, 그리고 알라딘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한국과 미국, 코미디와 사회 드라마, 실사 애니메이션까지. 장르도, 국적도, 이야기의 결도 전혀 다른 이 영화들이 어떻게 나란히 '천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그해를 평정할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오늘은 이 세 편의 영화가 가진 각자의 매력과 함께, 국경과 장르를 넘어 관객의 마음을 훔친 그들만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제 나름대로 한번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극한직업: 웃다가 정신 차려보니 천만 영화
2019년 설 연휴, 기억하십니까? 온 가족이 극장에 모여 앉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배꼽 빠지게 웃었던 영화가 한 편 있었습니다. 바로 '극한직업'입니다. 마약반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위해 치킨집을 인수했다가, 뜬금없이 '수원 왕갈비통닭' 맛집으로 대박이 난다는 이 황당한 설정 하나만으로도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쉴 틈 없이 터져 나오는 '말맛'에 있습니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툭툭 던지는 것 같으면서도 리듬감이 살아있는 대사들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같은 명대사는 물론,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 하나하나가 어찌나 찰진지, 러닝타임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실적은 바닥에, 해체 위기까지 몰린 '짠내'나는 마약반 5인방. 류승룡,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 이 다섯 배우의 합은 정말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낮에는 닭 튀기고 밤에는 범인 잡는 그들의 고군분투를 보며 관객들은 아마 다섯 명 모두를 응원했을 겁니다. 결국 '극한직업'은 기발한 설정, 맛깔난 대사, 배우들의 환상적인 호흡, 그리고 명절에 온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시의적절함까지, 흥행의 모든 요소를 갖춘 영화였습니다. 10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게 코미디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요? '극한직업'은 그 미덕을 200% 보여준, 아주 고마운 영화로 기억됩니다.
기생충: 웃다가 등골이 서늘해졌던 그 지하실의 기억
2019년, 그리고 2020년 초까지 대한민국은 '기생충'이라는 이름 하나로 들썩였습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싶어 뉴스를 몇 번이고 다시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기생충'은 그런 화려한 수상 기록을 떠나, 영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초반,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하나둘씩 '기생'해 들어가는 과정은 정말 기가 막힌 블랙코미디입니다. 계획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도, 어딘가 불안하고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지하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 영화는 단숨에 서스펜스 스릴러로 장르를 갈아타며 관객의 숨을 멎게 만듭니다. 그야말로 '봉준호 장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웃음이 공포로 변하는 그 서늘한 감각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결국 '기생충'이 전 세계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빈부격차'와 '계급'이라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불편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일 겁니다. 반지하와 언덕 위 호화 저택,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비, 그리고 '선을 넘는 냄새'까지. 영화 속 모든 장치는 이 보이지 않는 계급의 벽을 너무나 아프고 날카롭게 시각화합니다. '기생충'은 우리에게 단 한 번도 '누가 옳고 그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상황을 보여주고, 씁쓸한 웃음과 함께 '당신이라면 어땠을 것 같은가?'라는 무거운 질문만 남길뿐입니다. 화려한 수상 기록보다 더 대단한 건 바로 이 질문의 힘. 그래서 '기생충'은 10년, 20년이 지나도 계속해서 회자될 수밖에 없는 불멸의 명작으로 남을 겁니다.
알라딘: 램프의 요정 지니가 다시 소환한 어린 시절의 추억
저 같은 40대 아재들에게 1992년작 애니메이션 '알라딘'은 특별한 추억입니다. 'A Whole New World'를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게 들으며 가슴 설레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실사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솔직히 '추억은 추억으로 남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정말 '물건'이더군요. 애니메이션 속 로빈 윌리엄스의 지니가 워낙 넘사벽이었기에, 윌 스미스가 그 역할을 맡는다고 했을 때 우려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유쾌하고 능청스러운, 그러면서도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지니를 완벽하게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랩과 춤이 어우러진 'Friend Like Me' 장면은 정말 어깨가 들썩일 만큼 신났고, 영화의 성공 절반은 윌 스미스의 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 영화가 영리했던 점은, 단순히 원작을 그대로 따라 한 게 아니라 시대에 맞게 캐릭터를 성장시켰다는 겁니다. 특히 더 이상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가 아니라, 스스로 술탄이 되겠다고 외치는 '재스민'의 주체적인 모습은 큰 감동을 주었죠. 원작의 향수를 간직하면서도, 지금의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더한 겁니다. 화려한 아그라바 왕국의 풍경과 귀에 익은 명곡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니, 어른인 저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아이 손잡고 극장에 가서, 저도 아이도 함께 즐거웠던 몇 안 되는 영화. 그래서 '알라딘'은 제게 더 특별한 작품으로 남아있습니다.
결론
2019년은 한국 영화계에 참 대단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극한직업, 기생충, 알라딘. 이렇게 다시 모아놓고 보니, 이 세 영화가 어떻게 한 해에 나란히 천만 관객을 넘었는지 그 저력이 새삼 느껴집니다. 배꼽 빠지게 웃다가(극한직업), 등골 서늘한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가(기생충), 화려한 마법에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하면서(알라딘), 그야말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한 해였습니다.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들이지만, 결국 이 세 작품의 성공은 한 가지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점입니다. 서민들의 짠한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극한직업), 외면하고픈 계급의 민낯을 마주하게 하고(기생충), 잊고 있던 순수한 시절의 추억을 다시 꺼내주면서(알라딘), 영화는 우리와 끊임없이 교감했습니다. 결국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장르나 스케일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 마음에 깊이 파고드는가'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2019년, 우리를 웃고 울리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이 멋진 영화들 덕분에 참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