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바빠도 꼭 챙겨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개봉만 했다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영화 이야기만 해서, 안 보면 대화에 낄 수조차 없었던 그런 '대세' 영화들 말입니다. 제 기억 속에는 유난히 그런 작품들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시절 우리를 웃고, 환호하고, 또 열광하게 만들었던 영화 세 편을 소환해 볼까 합니다. 무더위를 시원한 웃음으로 날려버렸던 유쾌한 모험담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답답한 속을 통쾌하게 뚫어준 두 남자의 버디 무비 '검사외전', 그리고 대한민국에 전설적인 '떼창'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보헤미안 랩소디'까지입니다. 코믹 어드벤처, 범죄 오락, 음악 드라마. 이렇게 놓고 보면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재미'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관객들을 무장해제시키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즐거웠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려 합니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 – 바다 위에서 펼쳐진 액션과 유머
푹푹 찌는 한여름 밤, 만사가 귀찮고 머리 쓰는 건 딱 질색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시원한 맥주 한 캔 옆에 두고 아무 생각 없이 껄껄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이 간절해집니다. 제게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바로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쾌하고 시원한 여름 블록버스터입니다. 2014년 여름, 이 영화는 그야말로 '골 때리는' 상상력 하나로 극장가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조선 건국 초, 사라진 국새를 찾아야 하는데, 글쎄 그 국새를 거대한 고래가 삼켜버렸다는 겁니다. 국새를 찾기 위해 바다라곤 생전 처음 보는 산적들이 어설프게 해적이 되고, 바다를 호령하는 진짜 해적들과 얽히고설키며 벌이는 소동. 이야기의 시작부터가 이미 웃음을 보장하는 셈입니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코믹 케미'에 있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어딘가 허술한 산적 두목 김남길과 카리스마 넘치는 해적단주 손예진이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재미있지만, 이 영화의 웃음 8할은 단연코 배우 유해진의 몫입니다. 산적이었다가 졸지에 해적이 된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애드리브 같은 찰진 대사들은 정말이지 배꼽을 잡게 만듭니다. 여기에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시원한 해양 액션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입니다.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고래의 위용이나, 여러 척의 배들이 뒤엉켜 싸우는 화려한 해상 전투 장면은 '역시 여름엔 이런 블록버스 터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해적'은 권력 다툼이나 심오한 메시지 같은 건 과감하게 던져버립니다.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어떻게 하면 더 유쾌하게, 더 시원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일상에 지쳐 머릿속을 싹 비우고 싶을 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스트레스 없이 즐길 영화를 찾을 때, '해적: 바다로 간 산적'만 한 선택이 또 있을까요?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그 유쾌함은 여전합니다.
검사외전 – 반전과 유머가 살아있는 범죄 코미디
"붐바스틱!" 이 한 단어를 들으면,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으로 막춤을 추던 한 남자의 모습이 자동 재생되는 분들이 있습니까? 2016년 설 연휴, 극장가를 그야말로 '씹어 먹었던' 영화, 바로 '검사외전' 이야기입니다. 정의감 하나 믿고 밀어붙이다 살인 누명을 쓰고 하루아침에 죄수가 된 다혈질 검사.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허세와 사기 빼면 시체인 꽃미남 사기꾼.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남자가 손을 잡고 통쾌한 복수극을 벌인다는 설정. 듣기만 해도 벌써부터 흥미진진하지 않습니까? 40대 아재가 되고 보니, 황정민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왠지 모를 '믿음'이 갑니다. '검사외전'에서도 그는 억울함에 분통 터지는 수감자 '변재욱'의 모습을 묵직하게 보여주며 영화의 중심을 꽉 잡아줍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묵직한 황정민의 판 위에서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배우 강동원의 '미친 존재감'에 있습니다. 사기꾼 '한치원' 역할을 맡은 강동원은 정말이지 작정하고 망가집니다. 어눌한 영어 발음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죄수복을 입고도 모델 워킹을 선보이며, 결정적으로 선거 유세장에서 '붐바스틱'에 맞춰 현란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장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최애' 장면으로 꼽힙니다. 그전까지 '신비주의', '꽃미남'의 대명사였던 그의 파격적인 변신은 관객들에게 엄청난 웃음과 신선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처음 볼 때는 두 배우의 티격태격 케미와 강동원의 코믹 연기에 정신없이 웃느라 바빴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씹어보면, 이 단순한 버디 무비 속에 꽤나 치밀하게 설계된 복선과 반전이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감옥 안의 '검사'가 바깥세상의 '사기꾼'을 조종해 거대한 악의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꽤나 짜릿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어쩌면 뻔한 주제를, 이렇게 유쾌하고 경쾌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 '검사외전'은 무겁고 진지한 법정물이 아니라, 명절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의 정석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오늘따라 속이 답답하고 뭔가 통쾌한 한 방이 필요하시다면, 황정민과 강동원의 믿고 보는 조합, '검사외전'을 다시 한번 꺼내보십시오. "붐바스틱!" 한방이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 음악과 전설의 재현
"마마~ 우우우~" 2018년 겨울, 대한민국은 때아닌 '떼창' 열풍에 휩싸였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극장에 모여 앉아 스크린 속 가수를 따라 목청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치 1985년 웸블리 스타디움의 관중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만들어낸, 대한민국 영화사에 전무후무한 진풍경이었습니다. 40대인 제게 '퀸(Queen)'이라는 밴드는 학창 시절 라디오와 팝송 테이프를 통해 만났던 '전설' 그 자체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이나 밴드의 구체적인 역사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Bohemian Rhapsody', 'We Are the Champions', 'Radio Ga Ga' 같은 노래들은 이미 제 젊은 날의 배경음악처럼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흩어져 있던 추억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 '퀸'이라는 위대한 밴드와 '프레디 머큐리'라는 고독했던 천재의 삶을 스크린 위에 생생하게 되살려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그 자체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배우 라미 말렉의 신들린 연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단연코 '음악'이었습니다. 천재적인 아티스트의 성공과 방황, 그리고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열정의 순간들이 '퀸'의 명곡들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단순한 전기 영화를 넘어 한 편의 거대한 콘서트이자 드라마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의 마지막 20분, 전설적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이 시작될 때의 그 전율은… 아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신 분들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관객과 하나 되어 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던 'Radio Ga Ga' 무대부터, 벅차오르는 감동의 'We Are the Champions'까지. 실제 공연의 디테일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재현해 낸 그 장면은, 스크린 속의 인물들과 관객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하나가 되는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그저 신나는 노래와 감동적인 공연 장면에 흠뻑 빠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이 영화를 마주하니, 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진 프레디 머큐리의 고독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더 깊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는 세상의 편견과 싸우며, 음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던 한 명의 '아웃사이더'였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단순한 음악 영화가 아닙니다. 한 시대를 위로하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음악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증명해 낸 작품입니다. 오늘 밤, 오랜만에 퀸의 노래를 들으며 그 뜨거웠던 전율을 다시 한번 느껴봐야겠습니다.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결론
이렇게 세 편의 영화 이야기를 쭉 늘어놓고 보니, 그때의 유쾌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졌던 모험담('해적'),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었던 통쾌한 복수극('검사외전'),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전설의 무대('보헤미안 랩소디')까지입니다. 장르도, 국적도, 분위기도 모두 다르지만 이 영화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 '즐거움'이라는 가장 확실한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머리 아픈 생각 없이, 그냥 신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최고일 때가 있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025년의 여름밤, 혹시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고 계십니까? 이번 주말, 시원한 거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 유쾌한 영화들로 더위를 날려 보내시기 바랍니다. 분명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