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반역
9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10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명령과 약속
11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12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죄악보다 큰 은혜
13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1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에스라 9:9-15: 은혜를 받고도 또다시 죄를 짓는 우리
지난 묵상(9:1-8)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끔찍한 죄악 앞에서 옷을 찢고 '기막혀' 앉았던 에스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절망 속에서도 "잠깐의 은혜"로 "남은 자"를 주시고 "박힌 못"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붙들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은 그 기도의 뒷부분으로,
에스라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자비 앞에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더 크고 부끄러운 것인지를 처절하게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본문 들여다보기 (에스라 9:9-15)
에스라의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인식할수록,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더욱더 아파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1.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9-10절)
- 은혜의 요약 (9절): 에스라는 8절의 고백을 이어갑니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소성시켜... 성전을 수리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그는 자신들이 받은 구원과 회복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 그래서 할 말이 없습니다 (10절):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이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그렇게 살려주셨는데, 우리는 또 죄를 지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낯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은혜를 받은 '후에' 지은 죄이기에 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저버린 그 계명 (11-12절)
- 분명한 명령: 그는 자신들이 저버린 계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옛 선지자들을 통해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려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너희의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며느리를 삼지도 말라"고 하신,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을 금지한 명령이었습니다.
- 명령의 이유: 이 명령은 단순한 차별이 아니라, 그들이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강성하게 되도록"(12절) 하시기 위한 '보호의 울타리'였습니다.
3. 은혜를 짓밟은 배은망덕 (13-14절)
- "징벌은 죄보다 가벼웠나이다" (13절): 에스라는 놀라운 신학적 고백을 합니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징벌을 가볍게 하시고..." 70년의 포로 생활이라는 끔찍한 징계조차도, 사실 우리가 지은 죄에 비하면 '가벼운 징벌'이었다는 것입니다.
-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리이까?" (14절): 그토록 가벼운 징계를 받고, 이런 '남은 자'의 은혜까지 입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또 그 죄를 반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이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여 남은 자도 없이 멸망당해도 마땅한, '은혜를 짓밟은' 배은망덕한 죄임을 고백합니다.
4. "아무도 주 앞에 설 수 없나이다" (15절)
-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에스라의 기도는 어떤 변명이나 요구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은 의로우십니다(옳으십니다)"라고 선포합니다.
- 전적인 파산 선고: "우리가 이와 같이 죄악 중에 있사오니... 아무도 주 앞에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 그 어떤 의도, 공로도 내세울 수 없는 완전한 죄인이자 파산자임을 고백하며 기도를 마칩니다.
오늘의 나에게 주시는 말씀
1. 은혜를 받은 '후에' 짓는 죄가 더 무겁습니다.
에스라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이유는,
그들이 70년의 징계를 받고, 상상도 못 한 회복의 은혜를 입고도 '또다시' 그 죄를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그 사랑을 알고도 여전히 죄를 짓는 것은,
그 은혜를 모를 때 짓던 죄보다 훨씬 더 무겁고 악한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히 6:6).
2. 내가 받는 고난은 "내 죄보다 가볍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징벌을 가볍게 하셨다"(13절)는 에스라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작은 고난 앞에서도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야 할 마땅한 죄의 형벌이 '영원한 멸망'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이 땅의 그 어떤 고난도 사실은 '죄보다 가벼운' 하나님의 자비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고백이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3. 은혜에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잠깐의 은혜'(8절)에 너무 빨리 익숙해졌습니다.
그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다시 죄의 길로 달려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감격, 처음 받은 은혜의 기쁨이 '일상'이 되고 '익숙함'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다시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새롭게 묵상하며 그 감격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4. 진정한 회개는 '변명'이 아니라 '파산 선고'입니다.
에스라의 기도는 "하나님, 그래도 저희가 성전도 짓고..."라는 변명이나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라는 간청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주님은 의로우십니다.
우리는 죄인이라 주님 앞에 감히 설 수조차 없습니다."라는 전적인 파산 선고였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나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완전한 무능함과 죄인 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하며 엎드리는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베푸신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너무나 쉽게 그 은혜를 잊고 또다시 죄의 자리에 섰음을 고백합니다.
저희의 죄악보다 징벌을 가볍게 하시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합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결코 익숙해지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그 사랑 앞에 감격하며 거룩한 구별됨을 지켜나가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오늘 에스라와 같이, 주님 앞에 어떤 변명도, 공로도 내세울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오니,
"주님은 의로우십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오직 주님의 긍휼과 자비만을 구하며 엎드립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 에스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에스라 9장 1절-8절 / 큐티 (0) | 2025.11.13 |
|---|---|
| 에스라 8장 21절-36절 / 큐티 (0) | 2025.11.12 |
| 에스라 8장 1절-20절 / 큐티 (0) | 2025.11.11 |
| 에스라 7장 11절-28절 / 큐티 (1) | 2025.11.10 |
| 에스라 7장 1절-10절 / 큐티 (0) | 2025.11.09 |